가끔 제 이웃 블로거에게 듣는 평을 통해 몰랐던 저를 알게해주는 기분좋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독설가라든가, 냉소유머라든가, 좌빨블로거라든가, 풍자와 해학의 달인이라든가 하는 소리도 있고, 중구난방이라든가, 아님말고주의자라든가, 파워블로거(피식~)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저런 단어가 묘사하는 부분이 제겐 조금씩은 있다고 받아들여봅니다. foog님께서 좌빨블로거 추천도서 릴레이를 던진 후부터 은행에 앉아 세금을 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만 하고 있는 느낌이라...기왕 낼 세금, 고민은 그만하고 일어섭니다.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사춘기때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에리히 프롬에 꽤 매료된 적이 있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원래 유태계 독일인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독일을 벗어나 미국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정신 분석학자이며, 인문철학자, 사회심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링크 - 위키백과;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1941년 발간되었는데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근대인의 심리에 대한 고찰이 있는 책입니다. 어릴 적 읽어서 뭔 내용인지도 몰랐는데 대략..지금도 몰라여. '인간의 자아가 방해를 받을 땐 위기 상황을 느끼게 되고 곧 권위에 대한 복종과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권위주의, 전체주의에 빠진다' 결국 근대 산업사회는 인간을 소비지향적인 인간으로 만들었고, 광고와 암시를 통해 자신의 욕구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시장이나 권력에 복종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접어들게 되죠. 이런 인간상은 안정을 얻지만 자아를 잃게 됩니다.
'소유냐 존재냐'에선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소유'에 집착하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에리히 프롬은 이야기합니다. 물질적 재산의 소유뿐만 아니라 가치관, 사랑, 종교 역시 소유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삶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존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이 책을 읽다보면 느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현대의 산업화 사회가 인간의 정신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는가입니다.(어라? 이거 점점 좌측으로;;)
우리는 자동차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필요에 의한 것도 있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함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적인 마음은 소유는 하되 관심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욕망의 충족만 있을 뿐, 대상에 대한 애정은 없는 것이죠. 자동차는 마음에 드는 구체적인 오브제(object)가 아니라 지위의 상징, 힘의 연장이며 자아의 구축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차를 살 때 느끼는 심리적 흥분과 자극은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을 낳게 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 책을 통해 소유 양식의 삶과 존재 양식의 삶의 비교를 통해 인간이 진정으로 자아를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일관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몇 가지 새로운 단어(개념)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일부를 소개하자면
산업 종교
종교개혁자 루터에 의해 이루어진 모성적인 요소가 배제된 교회로 부터 출발. 이 가부장적인 기독교는 곧 기독교라는 가면을 쓰고 산업종교화 되었는데 인간에게 인간이 창조한 경제와 기계의 노예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남성적 권위에 대한 공포와 굴복을 야기했고, 불복종에 대한 죄악감의 양성, 이기심과 상호대립으로 인간 유대의 소멸을 초래했습니다.
시장적 성격
자신을 상품으로 경험하고 자기의 가치를 '사용가치'로서가 아니라 '교환가치'로서 경험하는데 몰두하는 인간형. 시장적 성격의 목적은 개인화(Personality) 시장의 모든 조건 아래에서 바람직한 인물이 되기 위한 완전한 순응입니다. 자신의 고유한, 일관된 자아를 소유하지 못하고 '당신이 원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게끔 끊임없이 자기를 변형시키는 성격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위의 자동차 소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자아에 대한 애정까지 없는 상태입니다.
에리히 프롬 철학의 정점이라고 (내 맘대로)이야기할 수 있는 '소유냐 존재냐'는 불타, 예수, 에크하르트, 마르크스, 슈바이처의 사상까지 인용하며 그들이 원했던 자아의 완전한 실현을 위한 방법, 즉 소유지향을 포기하라, 완전한 독립을 하라, 신(권위적) 없는 종교성을 회복하라 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어라 몹시 좌측으로??) 그리고 정치에서도 권위적인 위혐에 저항하기 위해 수동적인 '관객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능동적 '참여 민주주의'로 변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
마지막으로 존재적 사회의 확립을 위한 에리히 프롬의 제안 입니다.
1. 산업광고와 정치적 선전에 있어서 모든 세뇌적 방법은 금지되어야 한다.
2. 풍요한 국민과 가난한 국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3.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의 대부분의 불행은 연간 보증 수입을 보장해 줌으로써 없어질 것이다.
4. 여성은 가부장제 지배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5. 최고문화회의를 설립하여 정부, 정치가, 국민에게 지식을 필오로 하는 모든 문제에 관하여 조언을 해주는 것을 그 직무로 삼도록 해야 한다.
6. 효과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보급하는 체제도 확립되어야 한다.
7. 과학적 연구는 산업분야와 방위에 그것을 응용하는 일과는 분리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모든 제안을 실현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기에다 새로운 사회의 또 하나의 필수조건을 첨가하게 되면 이 어려움은 거의 거의 극복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핵무기의 폐기'이다.
어때요? 하나도 이뤄진 것 없죠? 이 책은 1976년 출간되어 30년이 흘렀습니다. :)
덧1)
책에 있는 몇 가지 인용구들
'생활의 내용으로서의 경제는 치명적인 병이다. 왜냐하면 무한한 성장은 이 유한한 세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경제학자 슈마허(E.F.Schumach)
'당신의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적게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 '소유'하게 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 소외된다' - 칼 마르크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장 19~21절
'공적인 일들을 지나치게 조직화함으로써 마침내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만약 현대인들 가운데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정조를 손상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면 개인적인 도덕성을 조국의 제단에다 끊엄없이 제물로 바칠 최소한의 이유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집단과 끊임없이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그 집단이 완전에 이르도록 하는 힘을 집단에 주어야 한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덧2)
블로고스피어와 관련해서...
1.
블로고스피어에 다양성을! 이것은 '자신의 소유'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집단지성의 발현을 원하는 것은 그 다양성이 한데 어우러져(소유양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고 궁극적인 지식의 탄생을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요?
2.
논쟁에서 지기 싫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견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무의식의 발현일듯.
덧3)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제일 힘들었심. foog님 책임 지셈!
덧4)
제게 주어진 바통은 딸랑 세개뿐이라서 이것을 누구에게 줘야할까? 겁나 고민...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login님, BoBo님, 덱스터님 받으시길. 아! 좌빨블로거가 추천하는 '좌빨스러운' 책이 아닙니다. 단지 '좌빨스러운' 블로거가 추천하는 책이면 됩니다. 덱스터님의 일반인을 쫓는 전공서적도 상관없다는 이야기~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사춘기때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에리히 프롬에 꽤 매료된 적이 있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원래 유태계 독일인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독일을 벗어나 미국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정신 분석학자이며, 인문철학자, 사회심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링크 - 위키백과;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1941년 발간되었는데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근대인의 심리에 대한 고찰이 있는 책입니다. 어릴 적 읽어서 뭔 내용인지도 몰랐는데 대략..지금도 몰라여. '인간의 자아가 방해를 받을 땐 위기 상황을 느끼게 되고 곧 권위에 대한 복종과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권위주의, 전체주의에 빠진다' 결국 근대 산업사회는 인간을 소비지향적인 인간으로 만들었고, 광고와 암시를 통해 자신의 욕구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시장이나 권력에 복종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접어들게 되죠. 이런 인간상은 안정을 얻지만 자아를 잃게 됩니다.
'소유냐 존재냐'에선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소유'에 집착하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에리히 프롬은 이야기합니다. 물질적 재산의 소유뿐만 아니라 가치관, 사랑, 종교 역시 소유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삶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존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이 책을 읽다보면 느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현대의 산업화 사회가 인간의 정신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는가입니다.(어라? 이거 점점 좌측으로;;)
소유의 양식을 사는 사람과 존재의 양식을 사는 사람과의 차이를 책에선 이렇게 설명합니다.
1. 학습
강의 시간에 주요 내용을 필기하고 암기한다.
강의 주제를 고찰하고 의문을 갖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수용을 한다.
2. 기억
사진이나 메모를 이용해서 기억한다. 즉 기억하기를 기피하는 정도까지 기록한다.
이전에 본 것이나 들은 것을 머리 속에서 이미지화하여 소생시키는 기억을 한다.
3. 논쟁
나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나의 의견을 상실하는 것은 나의 빈곤을 의미한다.
나의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이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의견이 나오길 기대한다.
4. 신념
아무런 합리적 증명이 없는 대답도 굽히지 않는다. 즉 신념의 소유를 원한다.
어떤 관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지향이며 태도이다.
5. 사랑
사회적 편의, 관습, 경제적 이익, 상호 의존 등을 사랑으로 경험하고 그것의 소유를 원한다.
사랑은 사물이 아니라 행위이고 생산적인 능동성이다.
이렇듯 모든 분야에서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유한한 세계를 무한히 소유하고자 하는 종말적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1. 학습
강의 시간에 주요 내용을 필기하고 암기한다.
강의 주제를 고찰하고 의문을 갖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수용을 한다.
2. 기억
사진이나 메모를 이용해서 기억한다. 즉 기억하기를 기피하는 정도까지 기록한다.
이전에 본 것이나 들은 것을 머리 속에서 이미지화하여 소생시키는 기억을 한다.
3. 논쟁
나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나의 의견을 상실하는 것은 나의 빈곤을 의미한다.
나의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이 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의견이 나오길 기대한다.
4. 신념
아무런 합리적 증명이 없는 대답도 굽히지 않는다. 즉 신념의 소유를 원한다.
어떤 관념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지향이며 태도이다.
5. 사랑
사회적 편의, 관습, 경제적 이익, 상호 의존 등을 사랑으로 경험하고 그것의 소유를 원한다.
사랑은 사물이 아니라 행위이고 생산적인 능동성이다.
이렇듯 모든 분야에서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유한한 세계를 무한히 소유하고자 하는 종말적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필요에 의한 것도 있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함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적인 마음은 소유는 하되 관심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욕망의 충족만 있을 뿐, 대상에 대한 애정은 없는 것이죠. 자동차는 마음에 드는 구체적인 오브제(object)가 아니라 지위의 상징, 힘의 연장이며 자아의 구축물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차를 살 때 느끼는 심리적 흥분과 자극은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을 낳게 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 책을 통해 소유 양식의 삶과 존재 양식의 삶의 비교를 통해 인간이 진정으로 자아를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일관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몇 가지 새로운 단어(개념)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일부를 소개하자면
산업 종교
종교개혁자 루터에 의해 이루어진 모성적인 요소가 배제된 교회로 부터 출발. 이 가부장적인 기독교는 곧 기독교라는 가면을 쓰고 산업종교화 되었는데 인간에게 인간이 창조한 경제와 기계의 노예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남성적 권위에 대한 공포와 굴복을 야기했고, 불복종에 대한 죄악감의 양성, 이기심과 상호대립으로 인간 유대의 소멸을 초래했습니다.
시장적 성격
자신을 상품으로 경험하고 자기의 가치를 '사용가치'로서가 아니라 '교환가치'로서 경험하는데 몰두하는 인간형. 시장적 성격의 목적은 개인화(Personality) 시장의 모든 조건 아래에서 바람직한 인물이 되기 위한 완전한 순응입니다. 자신의 고유한, 일관된 자아를 소유하지 못하고 '당신이 원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게끔 끊임없이 자기를 변형시키는 성격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위의 자동차 소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의 자아에 대한 애정까지 없는 상태입니다.
에리히 프롬 철학의 정점이라고 (내 맘대로)이야기할 수 있는 '소유냐 존재냐'는 불타, 예수, 에크하르트, 마르크스, 슈바이처의 사상까지 인용하며 그들이 원했던 자아의 완전한 실현을 위한 방법, 즉 소유지향을 포기하라, 완전한 독립을 하라, 신(권위적) 없는 종교성을 회복하라 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어라 몹시 좌측으로??) 그리고 정치에서도 권위적인 위혐에 저항하기 위해 수동적인 '관객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능동적 '참여 민주주의'로 변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
마지막으로 존재적 사회의 확립을 위한 에리히 프롬의 제안 입니다.
1. 산업광고와 정치적 선전에 있어서 모든 세뇌적 방법은 금지되어야 한다.
2. 풍요한 국민과 가난한 국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3.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의 대부분의 불행은 연간 보증 수입을 보장해 줌으로써 없어질 것이다.
4. 여성은 가부장제 지배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5. 최고문화회의를 설립하여 정부, 정치가, 국민에게 지식을 필오로 하는 모든 문제에 관하여 조언을 해주는 것을 그 직무로 삼도록 해야 한다.
6. 효과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보급하는 체제도 확립되어야 한다.
7. 과학적 연구는 산업분야와 방위에 그것을 응용하는 일과는 분리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모든 제안을 실현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기에다 새로운 사회의 또 하나의 필수조건을 첨가하게 되면 이 어려움은 거의 거의 극복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핵무기의 폐기'이다.
어때요? 하나도 이뤄진 것 없죠? 이 책은 1976년 출간되어 30년이 흘렀습니다. :)
덧1)
책에 있는 몇 가지 인용구들
'생활의 내용으로서의 경제는 치명적인 병이다. 왜냐하면 무한한 성장은 이 유한한 세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경제학자 슈마허(E.F.Schumach)
'당신의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적게 표현하면 표현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 '소유'하게 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 소외된다' - 칼 마르크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장 19~21절
'공적인 일들을 지나치게 조직화함으로써 마침내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만약 현대인들 가운데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정조를 손상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면 개인적인 도덕성을 조국의 제단에다 끊엄없이 제물로 바칠 최소한의 이유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집단과 끊임없이 활발한 교류를 하면서 그 집단이 완전에 이르도록 하는 힘을 집단에 주어야 한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덧2)
블로고스피어와 관련해서...
1.
블로고스피어에 다양성을! 이것은 '자신의 소유'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집단지성의 발현을 원하는 것은 그 다양성이 한데 어우러져(소유양식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고 궁극적인 지식의 탄생을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요?
2.
논쟁에서 지기 싫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견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무의식의 발현일듯.
덧3)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제일 힘들었심. foog님 책임 지셈!
덧4)
제게 주어진 바통은 딸랑 세개뿐이라서 이것을 누구에게 줘야할까? 겁나 고민...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login님, BoBo님, 덱스터님 받으시길. 아! 좌빨블로거가 추천하는 '좌빨스러운' 책이 아닙니다. 단지 '좌빨스러운' 블로거가 추천하는 책이면 됩니다. 덱스터님의 일반인을 쫓는 전공서적도 상관없다는 이야기~
- 실제 노무현 정부는 참여민주주의로 '자칭'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만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한 정권창출 초기에 참여했던 국민에 대한 '혜택의 분배'는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또한 한나라당(당시 야당)의 발목잡기라고 떼쓴다면 할 말 없습니다. 박노자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개혁 사기꾼이라고까지 칭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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