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은 개인의 지극히 편향되고 협소한 경험과 미흡한 정보로 인해 편견이 넘쳐나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따라서 믿든 말든 판단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경험담 속의 내용은 5%이상의 거짓은 없심다. 말인즉슨 95% 진실!

Designer. 이 얼마나 뽀대나고 가오나는 직업명칭입니까? 다른 분들의 직업 명을 들어보면. 의사, 회계사, 공무원, 기계관리사, 건축설계사 등등의 직업 명이지만...이름부터가 디.자.이.너입니다. 간혹 인테리어 디자인을 의장기사라는 표현을 쓰는데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뭔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죠. 그래픽 디자이너를 도안사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름값을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디자이너라는 직업입니다.

일단 우리가 디자이너라는 직업 명칭을 사용하는 직업군(群)을 한 번 봅시다.
그래픽(혹은 편집) 디자이너
제품(혹은 산업)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영상(혹은 비쥬얼) 디자이너
게임 디자이너(더 세분화되죠)
캐릭터 디자이너
환경 디자이너
무대 디자이너
광고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웹 디자이너....ㅅㅂ 전부 다 디자이너랍니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아니 가장 대우받는 직업군은 무엇일까요? 의사? 변호사? 회계사? IT벤처? 교수? 한국에서 가장 대우받는 직업군은 바로 '부자'라는 직업입니다. 의사라도 망해가는 개인병원장이면 인간취급 못받고 교수라도 꼬질하고 허름한 양복입고 빌빌대면 존경 안 해줍니다.(못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전 기능올림픽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오면 카퍼레이드까지 해주는 시절이 있었죠. 지금도 기능올림픽은 아직도 있습니다.(대다수 뇌리에서 잊혀졌지만) 물론 지금은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이 최고 (이공계) 인기 직종입니다. 문제는 예전에는 '기술자'로 인식해주는 직업이 이제는 기름밥이나 쳐먹는 '공돌이'로 인식을 한다는 겁니다. 청년 실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문에는 '생산직종 인력난 심화'따위의 소리입니다. 생산직을 개차반취급하는데 누가 그 직종에서 일하겠으며 그렇게 개차반 취급을 하다보니 당연히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 되는겁니다.

한 때 장승업, 김홍도, 신윤복 등에 관한 영화와 드라마가 화제가 되었었죠. 사실 예술가의 삶을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 재미는 분명 있었습니다만 그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불편했던 것은 그 시절의 인식이나 지금의 인식이나 그다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공계만 중인이라고 하지 마시길...예능계도 중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전에 애니메이션 쪽 일을 하는 동료가 제법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나름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지만 그만큼 불만도 많았습니다. 애니메이션 쪽 일은 선화, 동화, 채색 등으로 세분화 됩니다. 애니메이션 학원에서 배워 처음 일을 하게되면 처음에는 동화쪽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업계가 다들 하청 위주라서 영세하고 또 희한한 관례가 있었던지라 장당 몇 백원씩 받는 동화쪽 일도 많이 맡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들은 이야기지만 첫달에 3만원을 벌은 친구에게 선배들이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다'라고 이야기를 했답디다.(10년 전 이야기라 현재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길 바랍니다)

컴퓨터 그래픽을 하면 왠지 금새라도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 스타트렉이나 터미네이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 학원을 수료하고 가장 얻기 쉬운 자리가 게임 그래픽입니다. 큰 회사는 당연히 실력과 경력을 갖춰야 하고 초보는 대부분 조그마한 게임회사에 들어가죠. 월 백만원 조금 더 받고 몇 달 일하다보면 금새 회사가 어렵다고 조금만 같이 견디자며 임금 삭감 내지는 무급으로 일 해야 합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일하지만 그 몇 달 후면 남는 것은 앵꼬난 통장과 야근으로 망가진 건강입니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비쥬얼 디자이너들을 보면 모니터 앞에서 편집기기를 빠르게 돌려가며 한 프레임 프레임을 확인하는 모습이 멋져보입니다. 조금만 배우면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앉아서 억단위의 비싼 기기를 마음껏 조물락거리며 방송이나 영화를 만들어 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기도 힘들 뿐더라 기회를 잡았다손쳐도 30대 중반이면 벌써 손 놔야 합니다. 말 그대로 잡자 말자 놔야되죠.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에 관한 편견입니다.
1. 그런 작업 누구나 다 한다. (내가 손이 안 따라줘서 그렇지 감각은 킹왕짱)
2. 내가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도 공짜다. (어차피 그 돈 받고 일하기로 했자너)
3. 내가 원하면 30분 내에 로고 디자인은 제깍 나온다. (에이~ 그 까이꺼 뭐 별거 아니지)
4. 홈페이지 제작은 30만원 선에서 끝낼 수 있다. (웹페이지가 몇 백 페이지건)
5. 40대에 실장 타이틀 없는 디자이너는 인간도 아니다(능력 없으니 아직도 스케치나 하고 있지)
6.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노는거다.(디자인이야 잠깐. 나머지는 웹서핑이지 뭐)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느꼈던 시절은 초등학교 때 뿐입니다. 그 이후 중학교 시절, 그림 그리면 공부 못한다는 소릴 들었고, 고등학교 땐 공부 못하면 그림으로 대학간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대학땐 미술대는 꼴통이라는 소릴 매번 들어야했고 졸업후엔 영세한 디자인 기획실에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버텨나갑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직업이고 일이라고 해도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나의 작업이 나의 직업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아픔입니다. 며칠 밤을 새서 만든 결과물을 10초도 안 보고 '에이~ 차라리 예전 것이 낫다' 따위의 소릴 매번 듣는 것은 점점 견디기 힘듭니다.

90년대 초, 중반 프로그래머 업계엔 생각보다 대학에서 전공한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업계의 인물들은 대학 전공자를 인정 해줬습니다. 당시 computer graphics 업계엔 생각보다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업계의 인물들은 미술을 전공한 분들을 인정......해 줬을 것 같아요? 천만의 말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자신보다 작업 속도 느리다고 비꼬기나 했습니다. 같은 업종의 사람들조차 서로를 인정하기 싫어했습니다.

웹디자이너가 헐값이 된 까닭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하는 작업이나 전문 웹디자이너가 하는 작업이나 동등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감각있는 학생들도 있었죠. 하지만 전공자도 아닌 이들도 '누구나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도비사의 포토샵은 해외에선 전문 이미지 편집용 그래픽 소프트웨어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국민 소프트웨어죠. 초등학생 애들도 뽀샵은 기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이야기하는 피카소가 날렸던 시기에 우리는 3.1만세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기가 있었지만 그것을 걷어내더라도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인정 받았을지 의문이 듭니다. 맨날 예술가는 골골거리다 아파 죽거나 객사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뒤지고 나서야 조금, 아주 조금 대우를 해주는 사회입니다.

매번 최저임금, 평균연봉 어쩌구가 발표되면 가장 서글픈 사람들이 불법 노동자와 디자이너입니다. 현실과 통계는 넘사벽이 매번 존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작년(2008) CG, 그래픽 디자이너 평균 연봉은 1989만원이었습니다. 10년차가 되면 연봉이 3,228만원이랍니다. 경력 10년차면 거의 마흔입니다. 게다가 이거요...1998년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난립하는 학원과 디자인 회사의 오너들의 인식 부족으로 인한 총체적인 시스템 붕괴. 너 아니어도 다른 디자이너 널렸다는 식의 직업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모든 것들이 뭉쳐서 디자인 하기 싫은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어 줍니다.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의 김태원도 당장 웃기지 못하면 전과있는 대마초쟁이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니가 아무리 잘난 기타리스트면 뭘하냐? 지금 못 웃기면 넌 병신인증일세'...ㅈㄹ하네. 정말 구역질납니다. 교육 시스템도 문제, 사회 인식도 문제, 디자인 업계도 문제....

아름다운 나라에서 짐승처럼 끌려와 피부색때문에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목화나 따던 미국의 노예 '쿤타킨테'처럼, 아름다운 디자에덴 동산에서 끌려와 직업때문에 주는 돈이나 받으며 졸랑 야근으로 뺑이까는 한국의 디자이너는 정말 남북전쟁을 기다립니다.

덧1)
inspired by
영원한 중인 계급, 대한민국의 과학자 - 급진적 생물학자 김우재님

덧2)
블로깅 2년만에 글 쓰면서 가장 흥분했슴다. 뭣같은 글이니깐 흥분하지 말고 딴지 걸지말고 그저 무시해주시길. 동업계 분들에겐 진실로 미안합니다. 먼저 대한민국을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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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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