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j4blog)에 오시는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주인장인 재준씨는 가볍고 얇고 폭좁은 주제의식, 인적 네트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매우 사교적입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자면 위선적이라는 말입니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주저함이 없고 관계 유지에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상대방에 대한 정당한 비난이나 비판이 될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좁고 알량한 네트웍을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물론 내면 자아의 불만이야 어떻던간에...
그리스 시대 견유철학의 창건자인 디오게네스는 인간 내적인 자유와 개인적인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세계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꽤나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성향의 철학이며 꽤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니 소원이 뭐냐? ㅅㅂ 다 들어주께' 라고 물었을 때 '됐고..좀 비켜줄래? 햇볕 가리거등'이라고 대답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견유철학파인 데메트리우스는 시이저가 20만냥을 주겠다고 하자 거절하며 한 마디 합니다.'세시봉~ 유혹할려면 왕국 전체를 준다고 했었어야지' 이렇듯 견유철학은 기본적인 인습, 철학, 예의등을 냉소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링크 : 개같은 내 인생, 디오게네스)
최근 블로고스피어에 논란이 되고 있는 TNM과 광고미디어가 되고있는 블로그 그리고 블로그 원론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철학과 대화의 부재입니다. 사실 전 블로그가 자본주의의 개가 되건, 광고미디어가 되건, 특정 대기업의 딸랑이가 되건 관심도 없고, 논쟁을 벌일만한 논리나 의식수준도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돈을 받고 리뷰를 하면서 그렇지 않은 양 하는 것도 문제고, 그런 이들을 향해 일방적인 창던지기로 고슴도치를 만들어 버리는 것 또한 문제라고 봅니다.
블로그는 자유롭다고 전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저런 말을 씨부려도 딴지 걸 사람이 없다는 것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몇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대화의지'의 부재였습니다. 실상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방법 중 가장 먼저 취해야 할 것은 바로 '듣고 이해하기'이지 '먼저 이야기하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이야기를 먼저하고 그에 반응하는 다른 블로거들의 파시즘적 움직임은 뭔가 씁쓸함을 남기더군요. 1
블로거에겐 자신만의 근성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난 내 기준에 의거 자유로운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그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곤조이며 견유학파의 시각으로 보자면 '세계를 포기'하면서 얻은 내적인 자유의 획득입니다. web2.0과 블로그의 특징이랄 수 있는 집단지성과 창조적인 사유의 발현은 A와 B가 서로 합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A라는 목소리와 B, C,D라는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융화하여 나오는 A'라는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동조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레밍의 움직임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옆에 놈이 뛰어가도 멈춰서서 '왜 뛰냐! 걷자!'라며 문제제기를 하고 '뛰는 것이 빨리 뒤지기 때문이다'라면 그 다음 동조하는 것이죠. 예전 유태인 대학살 전범 재판때 그것을 본 누군가가 이야기하길 '그 넘의 죄는 극악무도하게 대학살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 명령에 대해 그저 충실히 이행한 '사유를 하지 않음'이다.'라고 했습니다.(확실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비슷할겁니다)
철학적인 잡소리는 여기서 그만하고... 남의 자유를 강제하지 말고 나의 자유 또한 스스로에게 강요 당하지 말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은 견유주의자이고 싶은 재준씨의 목소리입니다. 뭐 글타꼬 내가 술통 안에 살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먼산)
덧1)
insprired by
Gyuhang.net - 들쥐, 혹은 레밍에 관한 단상
덧2)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리뷰 잘 쓸 수 있는데...'
그리스 시대 견유철학의 창건자인 디오게네스는 인간 내적인 자유와 개인적인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세계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꽤나 급진적이고 실천적인 성향의 철학이며 꽤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니 소원이 뭐냐? ㅅㅂ 다 들어주께' 라고 물었을 때 '됐고..좀 비켜줄래? 햇볕 가리거등'이라고 대답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견유철학파인 데메트리우스는 시이저가 20만냥을 주겠다고 하자 거절하며 한 마디 합니다.'세시봉~ 유혹할려면 왕국 전체를 준다고 했었어야지' 이렇듯 견유철학은 기본적인 인습, 철학, 예의등을 냉소하며 무소유의 삶을 살았습니다. (링크 : 개같은 내 인생, 디오게네스)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는 관계 없...
블로그는 자유롭다고 전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저런 말을 씨부려도 딴지 걸 사람이 없다는 것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몇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대화의지'의 부재였습니다. 실상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방법 중 가장 먼저 취해야 할 것은 바로 '듣고 이해하기'이지 '먼저 이야기하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이야기를 먼저하고 그에 반응하는 다른 블로거들의 파시즘적 움직임은 뭔가 씁쓸함을 남기더군요. 1
블로거에겐 자신만의 근성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난 내 기준에 의거 자유로운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그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곤조이며 견유학파의 시각으로 보자면 '세계를 포기'하면서 얻은 내적인 자유의 획득입니다. web2.0과 블로그의 특징이랄 수 있는 집단지성과 창조적인 사유의 발현은 A와 B가 서로 합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A라는 목소리와 B, C,D라는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융화하여 나오는 A'라는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동조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레밍의 움직임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옆에 놈이 뛰어가도 멈춰서서 '왜 뛰냐! 걷자!'라며 문제제기를 하고 '뛰는 것이 빨리 뒤지기 때문이다'라면 그 다음 동조하는 것이죠. 예전 유태인 대학살 전범 재판때 그것을 본 누군가가 이야기하길 '그 넘의 죄는 극악무도하게 대학살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 명령에 대해 그저 충실히 이행한 '사유를 하지 않음'이다.'라고 했습니다.(확실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비슷할겁니다)
철학적인 잡소리는 여기서 그만하고... 남의 자유를 강제하지 말고 나의 자유 또한 스스로에게 강요 당하지 말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은 견유주의자이고 싶은 재준씨의 목소리입니다. 뭐 글타꼬 내가 술통 안에 살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먼산)
덧1)
insprired by
Gyuhang.net - 들쥐, 혹은 레밍에 관한 단상
덧2)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리뷰 잘 쓸 수 있는데...'
-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다. 들쥐의 습성은 한 마리가 맨 앞에서 뛰면 덮어놓고 뒤따라가는 것이다' 라고 씨부린 위컴이라는 주한미군장군이 있사옵니다. 개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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