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내셨남요? 전 브르르아이어티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1. 사건의 조짐
평상시 아이언맨만큼 건강한 딸아이(호주 나이 4살)가 슬슬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2. 사건의 심화
며칠 콧물을 질질 흘려대더니 이젠 기침까지 하며 열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3. 사건의 매우 심화
뭐냐! 너 돼지 독감이냐? 그러게 고기 밝히더니!!라며 구박을 하긴했습니다만 내심 걱정하고 있는 차, 이 녀석이 갑자기 귀가 아프다며 비명을 질러댑니다. 이것은...주화입마?? 급성중이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저녁8시)에 GP가 문을 열어둘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병원 응급실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4. 사건의 완화
여차저차하여 회사 근처(집에선 차로 20분 가량)에 있는 medical centre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그곳은 10시까지 운영한다더군요. 도착해서 손짓발짓으로 주화입마 아니 귀가 아프댄다. 그래서 왔다라고 이야기하고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많았던 까닭에 애는 울다지쳐 잠이 들고 결국 한 시간 가량 지나서 의사랑 면담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귀에 바이러스 감염(살짝 중이염삘)이 있었다고 약을 처방해주더군요. 옆에 있던 약국에서 $16 주고 약을 사서 얼른 퍼먹였습니다.

5. 갈등의 시작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귀는 안 아픈듯 옆에 와서 치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열은 높지만 워낙 절절 끓는 체질이다보니 그러려니하고.(속으로는 다 나았구나 생각하며) 문제는 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_-; 줸장! 옮았나?

6. 대형 사건 발발, 갈등따윈...
토요일, 감기 기운에 오전에 좀 누워있는데 마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허걱!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릴...! 옆에 사시는 분의 차를 타고 얼른 응급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7. 대형이라니꽌!
응급실 입구에 있는 간호사(뭐라고 하던데 까먹었심)를 만나고 form을 작성하고(작성이래봐야 sign 만)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기다림...기다림...기다림...아 ㅅㅂ 배고파....기다림...기다림...

8. 호주의 응급실 풍경
럭비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온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옆자리엔 뚱보 아가씨 코피가 철철흘러 휴지로 틀어막고 있습니다.
반대측엔 유모차에 탄 젖먹이 거의 빈사 상태로 널부려져 있습니다.
앞자리엔 3살 꼬마 엄마에게 안겨 죽음을 기다리고 늘어져 있습니다.
중년의 아저씨 비닐봉지를 입에 갖다대고 식은땀을 흘리며 배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어떤 여고생은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서 정신을 못차린채 엄마와 같이 와서 의자에 널부려져 있습니다.
네...이 양반들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9. 호주의 응급실 응급처치법
다리 부러진 학생을 보더니 '흠... 들어갈램?' 한참뒤에 보니 허벅지까지 깁스를 하고 나옵니다. @.@;;
코피 흘리던 뚱보 아가씨 코피 멎었습니다;;;; 그래도 의사는 보고 가더군요.
유모차에 탄 젖먹이는 의사를 잠깐 만났을 뿐입니다.
3살 꼬마 아이 역시 마찬가지.
중년의 아저씨는 행불.
여고생에겐 간호사가 파나돌(한국의 아스피린, 타이레놀 비스무리한 두통약)과 멀미약삘 구토억제제를 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보통 4시간 정도 지켜보고 그래도 쏠리면 정밀검사 하잡니다. -_-;;
이 모든 응급처치가 기다린지 3시간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10. 사건의 완화일까?
아무튼 임산부는 절대 안정이랍니다.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증상이 있으니 이러이러하라는 말 뿐. 초음파 결과 아이는 건강하다니깐 안심입니다.
응급실 Doctor는 편지 한 장 써주고 이것을 GP에게 보여주고 다음 상황을 진행하랍니다.

11. 호주 GP
GP(General Practitioner)는 쉽게 설명하면 동네 의사입니다. 한국은 무슨 병이 있으면 아무 병원이나 들이밀면 되지만 호주는 자기 family GP가 따로 있어서 새로 거래를 틀 땐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합니다. (링크; 호주의 만만디 정신)

12. 역시나 만만디
그래도 이번엔 응급실 레터도 있겠다. 월요일 오전 바로 집앞 GP로 향했습니다.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다. 그러니 의사 한 번 만나자.' 열심히 설명하니깐 창구 직원왈 '오후 5시 15분에 다시 오렴' 이런 ㄱ..욕이 나올뻔 했지만 참고 '알았다. 이따보자. 너.'라며 나왔습니다.

13. 보고싶어도 못 보는 그대의 이름은 specialist
GP를 만나서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전 처음 만난 인도계 영감님인데 겁나 친절은 합디다.(다만 그 깜빡깜빡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무조건 지금은 안정이 최고다. 스트레스를 받지말고 그저 충분히 쉬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스페셜리스트(한국말론 전문의)를 만나게 약속을 잡아서 전화해주겠다.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GP의 영감님 전화를 받아들자 하시는 말씀 '내가..응..그래..스페셜리스트랑 이야기해봤는데...응..갸가 하는 말이..응...만나봐야 할게 없데...응...그러니깐...응...그저 충분히 쉬고...응...담주 월욜 보자...응? 됐지?' ㅠ,.ㅠ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네~ 네~' 소리밖에.

14. 호주 의료 시스템에 대한 단편적 느낌
GP - 동네 병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이것저것 다 보는 동네 개원의? 정도
Medical Centre - 개원하지 못한 의사들의 병원은 아니고;; 약간 큰 종합 GP 비슷한 개념입니다.
Hospital - 병원입니다. 한국과 비슷.
Specialist - 전문의입니다. 한국은 대략 전문의가 개원의 정도 개념이지만 호주는 말 그대로 전문의입니다. 치과, 안과, 산부인과 등의 진료과목을 맡습니다.
GP, Medical Centre, Hospital은 국립이라서 전액 무료입니다. 다만 약국의 약값 정도만 내면 됩니다. 그리고 치과나 성형등은 개인의료보험을 들지 않았다면 무시무시한 돈을 내야합니다. 개인 의료보험이 있어도 돈을 많이 내는 편입니다. 특히 치과;; 호주 친구가 이야기해준 자신의 친구 이야기입니다. 그 친구 앞니가 부러졌는데 그걸 본드로 붙였답니다. 그래서 너 프라이빗 있잖어. 치료 받아라.라고 하니 와이프가 이미 치과 치료를 받았고 $5000 넘게 썼답니다. 그래서 돈 없다고 본드로;;;

야튼 나름 좋은 점도 많은데 한국의 편리하고 신속한 의료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던 저는 아직 고난행군 중입니다. 쓰다보니 엄청 길게 썼네요. 뭐 좋은 일이라고...;; 내용도 없고 주제도 없고~ 뭐 그렇다구요.(먼산)

역시 잉간언 긍강이 최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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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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