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 되었다.

단상 2020. 5. 22. 15:26

세상은 더 이상 예전의 세상이 아닙니다.

보고 싶은 부모님도, 친구도, 동료도 보지 못합니다.

정녕 절망 안에 오롯이 있지만 죽을 수도 없습니다.

 

삶의 모든 좌절과 실패, 불행과 불안, 미성숙과 미흡함의 근원은 외부에서 비롯되었다! 스스로에게 세뇌를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내 모습은 어제 '나'라는 새끼가 저질러 놓은 행위의 결과였음을. 그럼에도 인간은 미련하기 그지없는지라 자기 합리화를 위해 오늘을 낭비합니다. 자신을 향한 불만을, 자기를 향한 분노를 사회를 향한 광기 어린 격분으로 표출하며 '세상은 부조리하다, 그리하여 나는 분노한다'라고 우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하여 카뮈가 말한 것처럼 '자살이란 인간의 삶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자이같은 화려한 자살을 꿈꾸기도 합니다만... 실상은 나는 카뮈도 아니고 다자이도 아닌 그저 보잘것없는 필부에 불과했다는 것을 진작에 깨닫고 있었습니다. 단지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죠. 그러니 자살이라니, 그것은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단어입니다. 그저 내 속의 우매한 탐욕을 채우지 못한 어리석고도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이죠. 

 

10대 때 꿈꾸었던, 20대 때 꿈꾸었던 나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지금의 모습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줄로 알았는데... 매번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며 오늘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또 내일을 맞이하겠죠. 오늘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내일을. 내가 꿈꾸었던 삶을 위해 얼마나 하루를 치열하게 살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창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실상 오늘보다 나은 모습을 위해 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제 곧 타국에서의 삶을 산지가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삶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내일은 오늘보다는 티끌 만큼이라도 나은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4년 만에 폐허가 되어버린 블로그를 조금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헛살았지 않았기를 기도합니다.

 

 

덧 1)

고향의 모습도 그렇듯이, 계속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이웃분들의 모습을 보면, 지난날 고향 골목길에서 같이 정을 나눴던 이웃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그 자리에 있어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덧 2)

한국의 상황은 많이 나아지셨나요? 호주는 아직도 Hell on Earth입니다. 다들 건강 꼭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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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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