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블로그는 개인 미디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미디어와 닮은 꼴이 많아서 그런 말을 붙였지않나 생각이 듭니다. 정보를 생산하고 배포하고 그로 인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미디어의 모습을 블로그는 온전히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라는 단어가 붙어 미디어이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사상, 성향, 정보등을 반영합니다. 

즉 블로그는 절대 객관적이지 않은 미디어입니다.[각주:1] 주관적인 미디어일 뿐이죠.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글이나 멀티 미디어를 배포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욕을 얻어 쳐먹든지말든지 지 꼴리는대로 글을 쓰는 것이 블로그입니다. 무엇이건 자유롭게 까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치뤄야 할 댓가입니다. 자유롭게 까대는 대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고 까대는 대상으로 부터, 혹은 그 지지층으로 부터 비난과 더불어 다양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수긍해야 합니다. 블로거가 가진 딜레마는 바로 이 자유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쓰고 싶은(까대는) 글을 쓴다->인기를 얻는다 보다는 내가 그다지 관심없는 (하지만 방문자가 좋아하는) 글을 쓴다->인기를 얻는다가 휠씬 더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과 블로고스피어의 현실은 한치도 틀림없이 닮아있습니다. 굳이 내가 쓰고 싶지만 욕을 먹기 쉽고, 인기를 얻긴 힘든 글을 쓰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약간 깊이 있어 보이는, 아주 살짝 진보적인 정치 성향인척 하는, 그런 글들로 인기 + 수익을 얻는 것이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습니다.

살짝 다른 이야기로, 한국의 인터넷 환경부터 되짚어 봅시다.

1.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공짜
한국의 컴퓨터 사용자들은 일단 컴퓨터 하드웨어를 제외하곤 돈을 지불하는 것을 병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나먼 정글 286시절부터 5.2인치 플로피에 복제된 다양한 게임들은 손에 손잡고 이동을 했었고 컴퓨터를 사면 응당 윈도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아래아 한글을 위시한 워드프로세스 + 사용하지도 않는 3D Studio까지 설치를 해줬습니다. 당연히 컴퓨터를 구입할 때마다 용돌이들은 수많은 게임을 무료로 설치해주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2. 인터넷은 공짜의 바다
한국 사용자들에게 초기 인터넷의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공짜의 바다였습니다. 모든 서비스는 무료였고 모든 자료는 무한 공유되었습니다. 물론 해외에서 출시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들은 해외의 뛰어난 크래커들에 의해 출시와 동시에 크랙되거나 시리얼 번호가 제공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돈을 지불하는 행위 자체를 '못 배워서' '멍청해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3. 폐쇄적인 검색 환경
구글 검색 로봇이 우리가 모아놓은 방대한 DB에 접근하는 것이 싫다! 그거 날로 먹겠다는 것 아니냐!! - 이게 국내 최고 포털 네이버의 인식입니다. 사용자들이 만들어 놓은 DB를 자사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결국 타검색의 접근을 불허하는... 뭐 이정도면 기업의 윤리니 지랄이니 논할 자리조차 만들지 않습니다.

결론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의 블로그는 독립형보다는 서비스형이 대다수이기 마련이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대다수의 정보나 뉴스는 공짜라고 생각하고 기업들도 자신의 이익만 생각한 폐쇄적인 운영하고 있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세들어 살면서 집 주인 욕하기가 쉽지 않고, 남의 지식을 공짜라고 생각하다보니 내 지식의 가치를 인정하기 쉽지 않고, 폐쇄적인 환경에 살다보니 인식도 지식도 좁디 좁은 채 살게 됩니다. 이러한 몇 가지 풍토와 한계로 인해 한국에서 블로거는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로, 블로그는 미디어로 성장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자름선-------------------------------

잡설 1. 서비스형 블로그 ≠ 개인 미디어?
블로그가 개인 미디어라고 뻔질나게 말은 하면서도 한국내에선 대다수의 블로거(누구말마따나 천만 블로거)가 서비스형을 쓰고 있다는 것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미디어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말뿐인 개인 미디어라는 것이죠. 물론 모든 블로거가 독립형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블로거 개인이 비판적인 미디어를 지향하면서 서비스형에 안주하고 있는 모순적인 모습을 접할 때 약간은 답답한 점을 느낍니다.[각주:2]

블로그가 저널리즘의 성격을 띄기엔 국내의 블로고스피어는 아직까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해외처럼 현직 기자이면서 동시에 블로거로 존재하는 이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또 있다손 치더라도...[각주:3] 게다가 아마추어 저널리즘에 대한 시니컬한 시각은 - 심지어 블로거 본인조차 - 타인의 글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본인의 블로그 글 조차 가치폄하를 하는 마당에 타인의 블로그 글을 읽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거나 후원을 한다는 것은 무리겠죠. 이런 사용자들의 성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바로 기업입니다.

잡설 2. 블로고스피어의 시장 지배력?
국내 기업에서 블로그들의 영향력, 쉽게 말해서 잠재적인 마케팅 영향력에 대해서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수많은 블로거들이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블로그는 마케팅에 지배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하지만 블로거 외의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블로거들은 아직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베스트를 뽑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뽑습니다.

잡설 3. 블로고스피어의 지배자, 기업
많은 이들이 블로그의 시장지배력, 혹은 블로그의 바이럴마케팅 분야에서의 우위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블로그가 먼저, 강력한 영향력을 얻고 기업이 그 영향력에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블로고스피어는 기업이 돈을 지불하고 블로그들의 솜털같은 영향력을 모으는 형세입니다. 아직은 국내의 어떤 블로거도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합니다. 혹자는 누구누구 블로거의 기사가 이슈가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블로고스피어(블로거간의 글, 메타 블로그)외에서 그 이슈를 본 적이 있었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굳이 대한민국, 2009년 최고 등의 단어로 스스로 대표인듯 내세우지만 블로거들 외엔 아.무.도 모릅니다.

--------------------------------자름선-------------------------------

블로그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일기장, 자기 계발 계획서, 사회 비판서 등등...그렇다는 것은 그만큼의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 주도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기가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타인이 만들어 낸 상품, 정보를 들어주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자신이 제품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정보를 제공하는 능동적인 삶을 지향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 가장 적합한 툴이 바로 블로그입니다.

블로그가 말처럼 '개인 미디어'이기 위해선 독립성과 자율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외롭더라도, 조금 배고프더라도, 조금 쓸쓸하더라도...그러고보니 블로그는 참 삶과 많이 닮아 있군요. :)

덧1)
inspired by
민노씨 - 블로그 어워드: 독립형 블로그 배제의 의미
최진순 기자 - 블로그 저널리즘의 미래

덧2)
2010년 1월 1일부터 씁쓸한 소리 같습니다만...쓰고 싶은 글이었습니다. 작년에 초안을 잡아두고 이제야 마무리를 했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에 비해 정리는 안 되고 글만 장황해지고 말았네요.

덧3)
민노씨의 글에 남긴 제 댓글에 '네이버를 비판하기도 남사스럽다'는 의미는 블로고스피어와 블로거 스스로가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기업의 폐쇄적인 모습을 비판한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의미에서 쓴 글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엘리트 주의씩이나 있을만한 깜냥도 아니고 글타꼬 무슨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원 블로거도 아닙니다. 단지 기업 주도의 피식~스러운 어워드(씩이나)에서 상을 받고 좋아하는 블로거의 모습이 좋아보이진 않습디다.

덧4)
썅소리를 제대로 하자면...
끼리끼리 해쳐먹는 올해의 어쩌구에서 상을 받았답시고 나 파워블로거!라고 좋아하는 블로거들에게 한 마디만 하렵니다. '니가 파워블로거라는 것을  니만 알어. 아무도 몰라'
네~ 저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랍니다. -_-V 쥐뿔...ㅅㅂ 남들은 다 모르는데 나만 병맛나게 베스트 오브 베스트 배지 달고 있을 수도 없고...
그냥 그렇다구요.

덧5)
그나저나...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 블로거들간의 논쟁 중에 많은 경우가 이 부분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생긴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컷 싸우고 하는 말이 그거죠. 'ㅅㅂ 내 개인블로그에 쓴 글로 왜 ㅈㄹ이냐!' [본문으로]
  2. 너도 서비스형이잖냐!라고 이야기하실 분이 계시기에 전 이 블로그외에도 몇 개의 독립형 블로그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본문으로]
  3. 하는 일이 낚시인지라 자기 블로그에서도 낚시질에 여념없는 기자 블로거가 종종 있습디다. 예전에 기자였다고 깝죽대는 몇 몇 블로거들을 보면 속이 뒤틀려서 1989년에 먹은 삼겹살이 나올 지경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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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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