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통해 느끼게 되는 여러가지 느낌 중에서 최근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자각의 기회에 대한 것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온라인 인간 관계의 거리감입니다.. 그 중에서 타인과의 관계에 높은 비중을 두는 한국내의 블로고스피어 정서상 이웃 블로거와의 관계를 간과하고서는 블로깅을 논할 가치가 없을 지경입니다.

블로그, 블로거, 그들의 예의 그리고 그것의 간격라는 글에도 썼지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친근감의 크기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친근감의 크기와 다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는' 예의를 지킵니다. 당신과 나는 오랫동안 논쟁을 하고 글로 교류를 했지만 당신과 나 사이엔 '여기까지'라는 선이 있습니다. 또는 넘지 못할 벽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네요. 이런 선을 지키는 이유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도 있지만 상대방과의 관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인연과 MSN으로 가끔 채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과는 블로그를 통해 만나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습니다.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잡담(chit chat)을 통한 대화와 블로그의 글을 통한 대화는 분명 꽤 큰 차이를 보입니다. 블로그를 통해(혹은 게시판의 논쟁을 통해) 만나는 간격보다는 조금은 더 가까워 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친근감이 상승하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격은 존재합니다.

온라인에서 만남에 더 조심스러운 것은 대부분 문자를 대화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문자는 우리의 감정을 100% 표현해주지 못하고 시간적인 한계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적인 한계가 때론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논쟁 중에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되지만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망상의 날개를 활짝 펼 기회를 주죠. 그리하여 '되는대로, 내 식대로 읽기'신공을 무한대로 펼치기도 하고.

글은 현재의 감정을 100% 표현해주지 못하고 시간적 한계, 공간적 한계(인터넷 덕분에 없어지긴 했지만) 편견의 활약 등등을 감안하더라도 생각의 상당 부분을 서로 교환하게 합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온라인 인간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이 갖는 '인간관계'는 현실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것은 실존에 관련된 문제인데, 다들 아시는 이야기 중에 채팅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까지 된 연인이 만나고 보니 부부더라, 그런데 나중에 둘은 이혼했다더라는 희한한 사건은 온라인 인간관계의 실존을 이야기하는 단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실존적 가격


온라인 인간관계, 우리는 그것이 아주 불안하기 그지없는, 덧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 당신의 글이 싫어요.' 딱 한 마디면 그 관계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전 당신의 글이 이러이러해서 싫어요.'라는 글에 '저의 그 생각은 이러이러했습니다. 그런 면도 가지고 있는 것이 저라는 인간입니다.'는 대응은 더 강한 관계를 만들게 합니다.[각주:1] 온라인 실존이 현실의 실존보다 더 실존적이라는 새드개그맨님의 말(에 대한 풀이:)도 있지만 온라인 인간관계가 더 실존적이기 위해서는 '온라인 실존이 반드시 대화 상대간엔 존재해야 한다'는 필요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해방된 실존을 발견하고, 또 그 실존으로 타인의 실존과 교류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온라인 관계의 실존을 실존케하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글을 통해 우리의 실존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군요. 그리고 우리의 실존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자유로운 글쓰기.

덧1)
inspired by
필로스님의 글과 필로스님의 블로그에 남겨진 민노씨풀이 :)

덧2)
쓰다보니 읽고 있는 책이랑 내용이 섞여 중구난방. 이 또한 재준씨의 모습(쪽팔리더라도)

  1. 단지 주의할 것은 둘 사이의 인연(혹은 관계)를 '소유'하기 위해 가식적이 되는 것, 예를 들어 '전 당신의 글이 싫어요.'라는 글에 '제가 그날은 집안에 뭔 일이 있어 예민했구요. 감정적이었는데 부디 이해를 바랍니다.'는 반응은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은 나를 부정하고 나의 행동을 변명하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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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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